한강 주변의 아파트 단지 중에서 “동부 이촌 지구”는 한강의 기운이 감싸고 도는 형상을 보인다. 한강의 흐름을 살펴보면 강줄기가 감싸 안은 형국(形局)의 땅에는 예외 없이 부촌이 형성되어 있다. 워커힐 아파트와 압구정동, 동부이촌동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. 복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땅에 산다는 풍수의 이론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.

한강의 북쪽을 따라 진행하는 강변북로의 이촌동 지점, 한강대교로 빠져나가는 즈음에는 저층의 중심 부분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생소한 구조의 건물이 있다. 인접한 강변도로의 자동차 소음과 진동을 피하고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한 설계적인 배려였을까? 건물이 지어질 때에는 그 특이한 외형에 약간의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지만 완성된 모습을 대하자 내 생각이 기우(杞憂)였다는 것을 깨달았다. 구멍이 뚫린 듯한 그 부분에 강한 조명을 비춤으로써 시각적으로 불안하고 결(缺)한 부분을 채워 놓았을 뿐만 아니라, 오히려 그 불빛으로 인하여 그 아파트의 기(氣)가 주변의 아파트보다 상승하는 느낌이었다.

특히 한강 주변의 즐비한 고층아파트들이 바람의 이동 통로를 막아서, 큰물과 땅이 접하는 지역의 대기정체현상을 발생시키고 오염을 가중시키는 문제점을 볼 수 있는데, 그 건물의 구멍은 기의 이동통로까지 확보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본다. 이런 구조의 건물들은 홍콩이나 중국에서는 가끔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용(龍)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상서롭게 여긴다.

이 글은 2002년10월03에 쓰여졌습니다.